영호천문은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여향 따위는 처음부터 그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기도 했지만. 그는 다소 짜증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그의 뇌리에서는 계속하여 같은 생각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이었다.영호천문은 찔리는 바가 있는지라 부지중 얼굴을 붉혔다.옥화미는 날카롭게 웃어 제꼈다.무슨 뜻입니까?영호천문은 허탈하게 웃었다.갑자기 왜 그런 식으로 말을 돌리죠?무엇 때문에?챙! 두 개의 술잔이 가볍게 부딪쳤다. 옥화미의 눈은 영호천문의 회색빛 눈을 깊숙이 들여다 보고 있었다.나는 녀석의 미래를 막지 않으리그의 결정은 한참 후에야 내려졌다.그 손은 여인처럼 희고 고왔다.그만 죽어야겠구나, 왕영.이곳은 공히 악양 제일의 전장으로서 그 규모도 그렇지만 신용(信用) 또한 천하에서 손을 꼽아주는 정도였다.천첩은 오직 부주님만을 믿을 뿐입니다.그러고 보니 오십 년만이군. 누군가 이런 식으로 나를 찾아온 것은. 대체 누굴까? 혹시 그녀가 보낸 사람?그녀가 나를 배신하고 타인들에게 내 목숨을 팔았소.의기가 통하는 젊은이들끼리니만치 인물 구성이 다양한 주연(酒宴)을 벗어나 따로 호젓하게 어울리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다.구월 구일, 즉 중양절이다. 전 무림인들이 초긴장 상태에서 날짜를 짚어가던 그 날이 왔던 것이다.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종이에 적힌 내용이었다.주육풍화상은 곁눈으로 영호천문을 힐끗 응시했다.킬킬. 천문, 바보같은 놈! 굴러 들어온 떡도 차 버리느냐?그는 절뚝거리는 걸음을 멈추더니 담가에 주저앉았다. 뜻밖에도 그의 신체근육은 보기 좋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후회되는 부분도 있기는 했었다. 옛날 일들.하지만 그들이 흘리고 있는 말은 꼭 농담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천설화를 아내로 맞고자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며, 이는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했다.고, 공자는 누구지?벽옥빛 욕수가 미녀의 나신을 흘러내리는 광경이란 여느 사내 같았으면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능히 현혹될 만한 것이었다.그도 역시 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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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천문이 대소를 터뜨리는 동안 혈무는 그 기세를 잃었는지씻은 듯 걷히고, 참담해진 왕영의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놈! 감히 본좌를 모독하다니, 죽고 싶으냐?크크. 걸작품이지. 전에도 말했지만 노부는 이것을 만드느라 삼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바쳤다.화영이때맞추어 부르지 않았던들 그는 필경 고통 속에 잠시나마 침몰하고 말았으리라. 그녀는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팔꽃의 덩굴처럼 부드럽게 손을 뻗어와 감각이 전혀 없는 그의 팔을 어루만져 주었다.그는 와중에서도 멀쩡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독각을 바위에 쑤셔 박은 채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그의 입가에는 한 가닥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마저 감돌고 있었다.이는 보화산의 밑부분에 뒤엉켜 있는 먼지의 두께로 추정해낸 것으로써, 그러고 보니 윗부분은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듯 약간은 정돈되어 있는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개중 정사십절이라 일컬어지는 세력은 하나같이 신예문파로서 극히 최근에 형성된데 비해 신비에 가려진 채 기존의 문파들을 뛰어넘는 암중(暗中)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지금 그가 있는 곳은 오직 그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내전 앞이었다. 그런데 그 입구에서부터 벌써 그는 코끝으로 확 끼쳐 오는 역한 피비린내를 맡았던 것이다.녹지주는 영호천문에게 말까지 가로막히자 복장이 터져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여전하군. 옛날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너는 우리가 짐승처럼 사육당할 때도, 서로 살벌한 각축전을 벌일 때조차도 항상 그런 식이었다.백수연의 싸늘한 주검이 전하는 충격이 바로 그러했다. 무림에 대죄(大罪)를 지었던 부친께선 소녀에 의해 무참히 돌아가셨고, 소녀도 혈육을 배신한 죄과로 자결할 참이니 사대(四代)에 걸친 벽력방의 죄과를 부디 용서하소서.영호천문은 그들 남매와는 별개로 전륜대제에게 정식으로 명첩(名帖)을 보냈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허허. 그렇게 면전에서 금칠을 하면 못쓰이. 이 늙은이는 민망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군.그 말에 다른 한 명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정녕. 눈으로 보면